여행문학

붓매는 장인(匠人)의 인생 이야기

백암 박용신 2014. 1. 22. 09:59

<붓매는 장인(匠人)의 인생 이야기>


산야의 어둠은 도심에 그늘보다 한 뼘은 더 일찍 온다. 초겨울 서설이 내린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후드둑’ 산비둘기가 정적을 깨며 하늘을 날고, 하얀 눈싸락 빗살로 번져 자잘한 눈보라 무지개처럼 영롱해질 때, 비로소 그가 피맺혀 멍든 손 마디를 감싸 안고, 작업실 공방문을 나와 기척없고 한기 서린 허공에 숨 몰아 기지개를 켠다. 유필무 그다. 들에 풀로 붓을 매는 장인.

 

                        ▲ 풀잎으로 붓을 매는 유필무 장인

 

 

<붓 매는 장인의 삶>
충북 진천군 초평면 신통리 야트막한 산 자락 밑, 그가 이곳에 찾아들어 작업실 필무공방을 짓고 붓을 매기 시작 한지도 어언 30여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이 길로 들어 한 때는 좋은 시절도 있었단다.  종업원을 50여명씩 거느리고 서울 인사동등 전국으로 모필을 공급한 시절은 꽤나 돈도 벌었다. 그러나 예상못한 IMF가 왔고, 붓도 중국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어 값싼 중국산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일일이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그로선 도저히 경쟁력이 뒤졌다.


하루하루 사양길에 접어들어 결국 빚만 쌓여 마을 앞 초평저수지에 몸을 던지려 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는 충북 청원군 안심사 어느 노스님의 도움으로 마음에 평정을 찾고, 다시 ‘삶’을 시작했다. 그만의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 없음을 직시,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 산야를 헤매기를 수 해, 우연히 산 길 옆에 앉아 하늘을 보다, 엉겁결에 풀을 뜯어 씹고, 이 풀로 혹시 붓을 매도 되지 않을까?

 

                       ▲갈대 등, 초필의 재료가 지천인 초평저수지 

 


<초필의 탄생>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영감을 얻어, 그 길로 공방에 들어 들판에 널려 있는 풀들로 붓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였지 수많은 시행착오, 또 넘어지면 일어나야만 하는 도전과 반복의 실험...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이 괴로웠단다. 배운 것이라곤 태어나 선조에게서 물려 받은 붓 매는 기술뿐인 그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 늘 전쟁처럼 치열했고, 그 생의 숨 줄기를 지탱키 위해 그만의 작품을 꼭 만들어야 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응 한다고 했던가! 마침내 그만의 그만이 만들 수 있는 풀잎 향이 묻어 나는 붓, 초필이 탄생했고, 유필무라는 기능장이 있는 거란다.


붓은 거의 짐승에 털을 가공해 만드는 모필이 주종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통념을 깨고 갈대줄기, 쑥뿌리, 옥수수껍질, 칡뿌리, 시골 길섶에 억세게 나는 띠풀 등, 섬유질이 있는 모든 식물의 줄기를 다듬어 그야말로 풀잎 향이 나는 환상의 붓을 만드는 것이다. 이름 하여 초향. 멋지지 않은가! 조선시대에 어느 시 잘 짓는 풍류 기생의 이름같은...

 

                        ▲옥수수 껍질과 갈대 목대궁.

                     

                        ▲잘게 쪼개고 또 쪼개고  세필이 될 때까지...

 

                        ▲마침내 탄생한 초필 풀잎향기가 난다

 


<예술 혼을 담아>
무서리진 산녘. 공방 처마로 어스름 달빛이 교교히 자리하는 시각. 꼼지락, 꼼지락, 굼뱅이처럼 자리를 털고 느리게 움직이는 사내. 삶을 거슬러 남들과 반대로 사는 생활이 익숙해져 그의 손놀림은 야밤에 더 막힘이 없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붙이며 가마솥에 소금물을 풀고 가을 끝물에 작업해 음지에서 말린 붓 재료, 띠풀이랑 갈대 목대궁 등, 풀잎 다발들을 가마솥에 7~80 온도로 24시간 이상 쪄 음지에서 진둑진둑 말려서 다듬이 돌에 놓고, 수 천 수 만번 풀의 섬유질 갈기가 부드러워 질 때까지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게 강약의 리듬을 손아귀로 조절하며 다듬질해서 글씨가 써질 만한 갈기 털을 만든다. 길고 짧은 갈기들을 잘 석어 붓을 매고 붓대가 될 만한 대나무나 꼭꼿한 나무에 붓제를 서각하여 조립을 한 다음 새벽 닭이 울기 전, 두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먹을 갈아 그의 예술작품에 듬뿍 먹물을 묻혀 하얗고 순한 우리 닥종이 한지에 비로소 시필을 하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불을 지펴  쪄내는 가마솥 , 그리고 아궁이.

 


<명품의 탄생, 일필휘지로 내닫는 초향.>
갈기가 드세 글자 쓰임이 막히거나 껄끄러우면 지금까지의 작업은 허사. 같은 가마에서 나와 만들어진 다른 붓들도 마찬가지 불량이 난 것이다. 사정없이 분질러 쓰레기통으로... 지금까지의 수고와 노력한 시간들...이런 것을 두고 도로아미타불이라 했던가. 본래 좋은 작품이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내 안의 모든 욕망이 사그러들어 양순해질 때 진정한 순수가 잉태되고, 그 순수가 마음 중앙에 자리할 때 만이 비로소, 명품이 탄생하는 것.

 

                       ▲각종 공예대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현실과 허구의 비애>
그는 주로 음의 기가 성한 음지와 야밤에 작업을 한다. 풀이 양의 기가 성한 낮이나 햇볕을 보면 너무 마르고 바스러져 작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녹이며 하는 작업. 한 달 내내 작업을 해도 겨우 20여필 밖에 만들지 못하는 수제품. 도를 닦듯 하는 일상의 작업. 지독한 도로와 도로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실제와 허구의 ‘삶’. “허탈하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까짓 돈 몇 푼에 자식을 팔 듯 작품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짓이..” 어쩔 수 없이 몇 호, 몇호. 몇 필, 몇 필. 크기와 숫자를 헤아려 셈을 하고, 여식을 시집 보내는 애비의 마음으로 그것들과 또 이별을 해야 하는 여느 예술장이들과 다를 바 없는 끈질긴 현실과 허구의 비애.


<앞으로의 걱정>
이토록 작품을 팔아 연명하는 가난이더냐. 지겹고 끈질기게 유혹되는 세상 상업주의와의 타협. 그는 그러다 그의 작품이 이발소 그림될까 걱정이란다. “그래도 지금은 살만 하지요.” 각종 공예대전에서 수상도 여러 번하고 매스컴에서 관심을 갖는 덕에 청주시에서 아내가 운영하는 유림필방이 좀 알려져 붓이 제법 팔려서 자식 놈 등록금도 대고, 어깨를 조금은 피고 산단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점점 서예인구가 감소되고 있고, 정부에서는 문예진흥기금 예산을 1퍼센트나 책정했으나, 그 예산은 주로 바로 효과가 드러나는 공연예술 쪽이 우선이라 작품을 만드는 예능인에게는 전혀 혜택이 안가 전업 작가들은 끼니조차 해결키 어려운게 현실이지요.”


바램은 전통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전업작가들이 끼니 걱정없이 마음놓고 작품을 만들어, 우리 문화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국민의 정서함양에 일조 하는 거란다. 각종 강력범죄가 들끓는 세상. 인간 본연의 심성과 욕망이 양순해지면 사회의 나쁜 일들이 줄어든다나...


<밤새도록 마신 술,>
얘기를 마치고 공방을 나와 우리는 초평저수지 매운탕집에 들러 밤이 새도록 술에 취했고, 별 빛나는 밤, 저수지 뚝방에 버티고 서서 목티 터져라 소리쳐 ‘신라의 달밤’을 합창했고, 허공에 힘찬 방뇨를 했다. 온 세상이 부자되길 빌며...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