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별리고(愛別離苦)-장마 / 박용신
꽃들이 지는 날, 나는 술을 마셨다.
꽃잎들은 언제나 면도날로 손목을 긋던
내 청춘의 고뇌처럼 술잔으로 떨어져
딸년의 초경같은 붉은 피를 뚝 뚝 흘렸다.
슬픔들이 술과 함께 목젖을 타고 가슴까지 닿았을 때 나는 보았다.
사형지로 유배되는 절창의 그리움들을_
왜, 그리 술 맛이 쓰던지_
나는 왜 빗물주렴 넘어 쓸쓸히 떠나가는 카인을
한 번쯤 가슴 내밀어 뜨겁게 안지 못했나_
삭정이같은 차가운 손으로 의식적 사레만 쳤다.
듣는 이 없는 헛 말들을 허공에 주절 댔고
안주 대신 증오의 눈물을 삼켰다.
빗물 흐르는 유리창에 술 취한 육신이 무너지고
살 거죽으로 부스럼처럼 푸른 반점이 번져
오래된 해숫병자처럼 잔 기침을 했다.
빈 술잔 안으로 검은 밤이 무덤처럼 깊어 갈 때
목로주점 바람벽에 낙서로 스쳐 간 연인들이
서둘러 이별을 했고 남은 자의 비애가
억장으로 무너져 비 맞은 가로등의 살갗처럼 식어 갔다.
상심한 일상은 마른잎처럼 포도 위에 서걱댔고
비로소 가누지 못한 쓸쓸한 영혼이
꽃 잎들과 함께 하수구로 쓸려 떠 내려 갔다.
"태_액_시! 태_액_ 시시!....." 마포! 마포!
2005.8.13 풀잎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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