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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간다는 것-귀로

집으로 간다는 것_ 귀로/ 박용신 물고기가 산에 살고 나무가 바다에 산다면 물고기는 물을 버리고 산에 오를까? 나무는 산을 버리고 바다로 나아갈까? 결국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수 만번 꿈꾸고 시도 해 왔던 그 황홀한 자살도 넘실대는 파도 앞에 무릎을 꿇고, 처절한 패배의 용기만 확인 한 채, 소주 한 잔에 한치 회 한 점, 그렇게 동해바다를 한 입에 털어 넣고 나를 기다리는 일상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깊게 깊게 침잠해 있던 권태가 넝마처럼 다시 빨래줄에 걸릴 것이고 희망이 보이던가? 욕망과 야망은 어떻게 다른가? 집으로 간다는 것. - 귀로. 그것은 휴식이다. 지친 탐미주의자의 안식이다. 욕망을, 야망을 잉태하기 위한 달콤한 결혼 첫날의 섹스이기도 하다. 어차피 관념일 수 밖에 ..

풀잎편지 2022.08.07

고래사냥-3신 (욕망에 대한 그리움)

욕망에 대한 그리움(동해바다 3신)/ 박용신 겨울이 시작되자 무작정 어딘가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매일 같이 부대껴 동침을 하는 산이 아닌, 숲이 아닌, 권태로워질 때로 권태로워진 마른 코딱지 같은 일상을 하루 이틀쯤 벗어 오염만 되지 않는 다면 동해 바다쯤_ 그 푸른 짠물에 휘휘 헹구어 오징어처럼 말려서 목도를 하든 등짐을 지든 지칠 대로 지치게 끌고 와 몇 일 끙끙 이불 뒤집어 쓰고 꾀병을 앓다가 아내가 측은하게 달여 주는 보약 한 두첩, 못 이기는 척, "후후" 불어 마시며 호강을 하고 싶었다. 그리곤 어느 날, 툭툭 털고 일어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는데_ 퉁퉁거리며 배를 몰고 방파제를 빠져나가는 어부의 이글거리는 두 눈, 시린 손 허리춤 전대에 끼고 열 마리 만원을 외치는 아낙의 처절..

풀잎편지 2022.08.03

여름날, 어머니의 통쾌한 꼬장-<며느리 밑씻개>

여름날, 어머니의 통쾌한 꼬장- 오래 전 ~ 어머니는 휴가철 맞아 모처럼 서울서 내려온 동생내외와 손주들을 위해 여름 내내 애써 키우신 옥수수 따고 감자 캐, 찌고 삶고 정신이 없으시다. 제수씨는 어머니 어쩌고, 애들 과외 때문에 제삿날 못 왔다고 아양, 핑계를 대며 얼마가 들었는지 봉투하나를 어머니 허리춤에 슬쩍 찔러 준다. 어머니는 "얘는 뭘 이런걸!" 뿌리치는 척, 손으로 어깨를 살짝 처 주시는 살가운 풍경. 제삿날, 생일날, 안 온다고 "내 이것들 내려오기만 해 봐라!" 벼르시던 어머니가 그새 넘어 가셨다. 어귀, 방범등이 불 밝히고, 매깨한 잉모초 모깃불 향이 마당 가득 퍼질 때쯤, 마당가 평상에 모여 앉아 모처럼 옥수수 감자 파티, "얘 들아 나와서 옥수수 먹어라. 우르르~ 옥수수 하나씩 집어..

풀잎편지 2022.07.30

고래사냥 ( 2신 동해, 바람부는 바다 )

고래 사냥 (동해, 바람부는 바다 2신) / 박용신 사실, 바람부는 날엔 바다에 가기가 싫지. 그물을 던져 봐야 알태는 다 빠져나가고 그놈의 성게만 두 서넛, 그물만 찟기우고 몇 날 몇 일을 기다린 고래는 결국 구경도 못했어. 어부는 값 비싼 고래 한 마리 잡는 게 소원이라고 그래서 그걸 비싸게 팔아 퉁퉁배 융자도 갚고 딸년 시집도 보내야 한다고 퉁퉁거리며 바다로 나아가다 도루묵 몇 마리 잡고 "예길 헐, 오늘도 또 틀린 게야!" 돌아오는 갑판 위, 애꿎은 우럭 한마리 씰기덩 씰기덩 몇 토막 썰어 "고시래! 옜다, 이건 너희나 먹어라." 갈매기에게 인심 쓰고 "크, 역시 경월이 최고 제_" 알싸한 깡소주 한 잔. "그참 이상한 일이여! 이렇게 촘촘한 어망을 그 덩치가 어떻게 빠져나가지?" 동해에는 고래가..

풀잎편지 2022.07.25

고래사냥(제1신 : 철렁 가슴을 베었다.)

철렁 가슴을 베었다 / 백암 박용신 입찰이 끝난 시멘트 바닥 임자를 못 만난 도루묵들이 날아서 하늘로 가려다 기진해 모로 눕는 항구의 아침, 한 잔 소주를 털어 우물우물 날 생선으로 허기를 때우는 기겁의 세월들이 비늘처럼 방파제에 번들대고, 늙은 어부의 구부린 등뼈 위로 소금끼에 겉 절은 일상이 파도에 부딪혀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그물에 갇힌 조각 난 바다는 햇살에 묶인 어선들 따라 줄래 줄래 수평선 넘어 하늘바다로 간다. "잡숴 보슈." 불쑥 내미는 뱃노의 날 생선 한 점. "그거 얼마 드림 되는데요?" "아니 돈 달라는 게 아니라. 허! 그 사람 참!" 철렁 가슴을 베었다. 아주 예리한 시선에_ (주문진항에서) 2004.12.4 풀잎편지(poolip.net)

풀잎편지 2022.07.24

(옛 풀잎 한 장) 꾀꼬리 편지

꾀꼬리 편지/ 박용신 모내기가 끝난 논에 모가 뿌리를 내리고 제법 푸르러진 벼포기가 이파리를 바람에 팔랑대고 백로들이 올챙이 잡아먹으러 논 고랑을 어슬렁거릴 때 쯤 이면, "얘,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면사무소에 들러 누에 알 좀 타 오렴" 어머니의 또 다른 생계꾸리기 사투가 시작된다. "누에치기" 누에치기는 춘궁기 농촌의 유일하게 현찰을 만질 수 있는 부업으로 누에가 고치를 잘 지어 공판장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 돈을 많이 받으면 그 동안 밀린 외상값이며, 월사금을 납부하고 읍내 장에서 쇠고기 근이나 사다 집안 식구들이 포식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민버루 밀밭가에 몇 십년 씩 자란 뽕나무에 몸빼를 입으시고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치마폭 가득 뽕을 따시고 다레키 종뎅이 까지 채워 나를 부르시곤 했는데, 그렇게..

풀잎편지 2022.07.18

도라지 필 땐게 언능 와!(옛 풀잎 한 장)

이제서야 보았다. 집 앞 작은 가게가 유난히 환해 보인다 싶었더니, 조막 화단에 도라지꽃이 화들짝, 소문도 없이 피어나 있다. 그래, 도라지꽃이 필 때구나. 누가 볼 새라 몰래, 갑자기, 꿈결에 온 것처럼 화들짝 피어나는 도라지꽃의 계절이구나. 지금쯤 강원도 신리에 가면 그 너른 비탈밭에 도라지꽃들이 무진무진 피어나고 있겠다. 봄날, 옥수수 알갱이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굽은 허리 힘겹게 움직이면서 고랑마다 옥수수를 뿌리던 촌부의 거친 손길을 뒤로 하고, 장맛비가 후두둑 마당의 흙먼지들을 매캐하고 고소하게 흩뿌리는 여름 한낮 땡볕을 뒤로 하고, 비탈밭 가득가득 미어질 듯 환하게 피어나고 있겠다. 사람들은 달 밝은 밤에 소금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고 메밀꽃을 칭찬하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보름달 환하던 그 밤..

풀잎편지 2022.07.14

"누야 깨물어 봐두 돼 ?"(옛날 풀잎 한 장)

"누야 깨물어 봐두 돼 ?" "누야 깨물어 봐두 돼 ?" " 사_알_짝_" "알았어." 나는 두근 반, 세근 반, 꽁당 대는 마음을 억누르고 봉긋이 솟은 누이에 젖꼭지를 눈을 딱 감고 깍 깨물었다. "아야_얏!" "아야야_" "탁!" 등줄기를 후려치는 누이의 손. "살살 물랬지, 누가 세게 깨물랬어" 얼굴이 새 빨개 지면서 누이는 아픈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누이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엄마아빠가 들일을 나가시는 동안 소꼴을 벤다든가, 땔나무도 해오고 실패는 했지만, 가끔 망아지에 연장을 걸어 밭도 갈려 했고, 모내기 품앗이에 불려 다닐 만큼 일을 잘했다. 나는 누이 등에 업혀서 똥오줌 싸며 자랐고, 가끔, 누나는 나를 세수대야에 발가벗겨 세워 놓고 목욕시켜 준다는 핑계로 내 귀중한 물건을 함부로 ..

풀잎편지 2022.07.11

그대 친구! 출세의 건배를 (옛날 풀잎편지 한 장)

그대 친구! 출세의 건배를/ 박용신 쥐뿔도 모르면서 네가 떠드니 나도 잘났다 하고 이데올로기를 얘기하다 독재를 얘기하고 자유를 얘기하다 연애를 얘기하고 _ 주절주절, 전혜린을, 나혜석을, 노천명을, 소설가 김명희를, 윤심덕의 김우진처럼이라며 결국 그렇치 뭐, 아주 사소한 얘기에 목숨을 걸고 한 참을 열변 토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멋지게 죽을 거라며 심각해 하다 얘기가 딸리면 딥다, 안주만 집어먹고 꼴통을 쥐어 박여 쩔쩔매다 돌아갈 때면 화장실 가는 척, 단화끈 매는 척, 시간을 끌다가 매번 대신 학생증 맡기며 애걸 대던 그 강원도 촌놈 친구,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그래도 그 친구가 참 좋았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스무살씩이나 간직해 온 동정을 일주일, 여직 개시도 못했다던 청량리 오팔팔, 눈 밑이 퍼렇게 ..

풀잎편지 2022.07.06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울릉도 가는 길, 뱃머리 선창가에서 휴대폰 "삼성 갤럭시 울트라 s22"로 태양을 잡았다. 순간 촬영 50여 컷 중 잡힌 이 사진 한장, 심장이 콩당 거렸다. 어떻게 이런 빨간, 빨강을 표현해 낼 수 있지? 물론,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 정도로 청춘을 바친 무거운 대포 카메라를 진작에 가보로 보관해둔지 오래지만, 새삼 휴대폰 카메라 기술력에 감탄을 한다. 각설하고, 보는 순간 심장을 데일 것 같은 이 강렬한 태양, 문득,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처럼,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한다. 또한, 내 청춘 다 가도록 가슴 뜨겁게 달군 사람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서울시정일보/주필/ 논설위원장 백암 박용신의 여행문학 풀잎편지 (..

풀잎편지 2022.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