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명례(歸命禮)하고 싶은 절
금강산 화암사(禾巖寺)
▲화암사 대웅전과 구층석탑, 대웅전 왼편 옆길을 통해 금강산으로 들어 간다.
어찌 살고 있는가? 그대여! 호흡조차 버거운 이 시절에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자신을 버려 버리고 훌쩍,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은 충동. 무아지경에서 백치처럼 토담집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따스한 햇볕즐기는 아다다처럼 그냥 그렇게, 그렇게 세상 경계(境界) 너머 아무거나 될 대로 되라 싶어, 결국, 어차피 어디론가 도피, 떠나야만 하는 절박의 시간, 가라, 달랑 조그만 배낭 하나에 잉크냄새 가시지 않은 손바닥 금강경 하나 챙겨, 석달 열흘이 걸리드라도 저기 고성, 금강산 자락의 시작, 팔만구암자 중 첫 번째의 절, 화암사(禾巖寺)에 가시기를 바란다. 가서 귀명정례(歸命頂禮)하고 다시는 속세(俗世)에 오지 마시기를... 하여, 저자에서 그대 얼굴을 설령 본 사람이 없다 한들 무어 그게 그리 대수이겠는가.
▲바람조차도 쉽게 넘지 못하는 선(禪)의 경계 일주문
휘돌아 감아 선 안개가 세상, 밖으로 난 길을 지우니 속세의 경계, ‘금강산화암사(金剛山禾巖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다가선다. 차를 내려 합장을 하고 차마 어간으로 지날 수 없어 기둥을 수줍게 비껴 매무새를 추스리고 구부렁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어디에서 오는 안도인가? 숨의 결이 청록의 갈참나무 숲길에서 편안하게 다가서고 불쑥, 오래 이 숲에 살고 있었을 포동한 다람쥐 한마리가 손을 부비며 인사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산사로 가는 길, 그 길 위에서의 마음은 늘 여유작작하고 무념(無念)의 명상 안에서 평안(平安), 그 정점에 서게 된다. 5월, 청포처럼 싱그런 단풍나무와 갈참나무 활엽수들의 피톤치드를 폐부(肺腑) 깊이 마시며 걷는 1km 남짓, 숨이 가빠 올 즈음 왼편으로 나타나는 부도탑군들 저기에 영면하신 고승들 춘담대법사를 비롯하여 화곡, 영담, 청암스님 까지, 깊은 산중이라 마을도 멀어 탁발도 쉽지 않아 끼니조차 버거웠을 오지(奧地), 무슨 기구한 사연으로 이 먼데까지 와서 잠이 드신 걸까?
▲눈내리는 첩첩산중 화암사 가는길에서 만난 수바위 그리고 전각, 수암전
그 때도 지금처럼 시절이 하 수상한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미치니 불현듯, 머리 깍고 화암사 선방(禪房)에 들어 한 천년쯤 살아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 더 올라 경내가 시야에 들어올 즈음, 오른쪽으로 매점인 수암전과 만난다. 어렵사리 찾아온 절, 무어 기념될 만한 물건이 없을까 이것저것 고르다 팔목염주 하나 사 들고 건너편을 보니 내내 먼 발치에서 시선을 자극하던 거대한 바위, 수바위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웅대 장엄한 수바위, 오르쪽 바위자락끝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수바위는 절의 창건자 진표율사를 비롯한 역대스님들의 수도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스님들이 즐겨 올라 가부좌 참선을 하기도 한단다. 전설에 보면, 수바위는 거대한 계란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모양에 다른 바위가 얹혀 있고, 윗면에 5미터 가량의 웅덩이가 있는데 언제나 물이 마르지 않고 고여 있어 가뭄이 들면 그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는 일화와, 이 절에 두 스님이 도를 구하기 위해 정진하던 차, 산속이 너무 깊어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시주도 없었고 마을도 멀어 탁발도 못하니 먹지를 못하고 아사(餓死) 직전에 이르러 내일 아침 하산을 결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끼니때 마다 지팡이로 세 번을 흔들어라 하여, 잠을 깨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작은 구멍을 세 번 흔드니 이게 웬일인가? 둘이서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여, 두 스님은 먹을 걱정없이 불도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객승(客僧) 한 사람이 찾아와 이 얘기를 듣고 세 번 흔들어 두사람 몫의 쌀이 나왔으니 여섯 번을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오지 않을까 하여, 밤을 샌 뒤 몰래 수바위로 달려가 작은 구멍을 여섯번을 흔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쌀은 나오지 않고 엉뚱하게도 피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한 인간의 욕심이 부른 과오로 산신(山神)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며,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 더이상 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수암전 앞 표지석에서 수바위 전설을 챙기고 바로 무지개다리(虹石橋)를 건너 조심, 조심, 경내로 들어 섰다.
▲감로수 돌확, 물맛, 바람맛, 그리고 푸름맛, 그리고 내 맛.
공양간과 템플스테이 숙소로 쓰고 있는 요사체 앞 코끼리형상 우물확에서 감로수 한 잔, 알싸하게 목을적시고 휠끗, 돌아본 풍경, 와락 쏟아질듯 멈추어 선 거대한 수바위, 자연이라는 거대함에 저항없이 압도 당했다. 이 빼어나고 장대한 풍경의 구경을 어떻게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유로 소유할 수 있단말인가. 금강의 맑은 계곡, 소(沼)와 폭포 그리고 단애(斷崖), 단애와 단애사이 기암과 괴석, 혹은 아름들이 혹은 키 낮은 나무들- 틈새 개울 옥색물로부터 튕겨오는 도돌이표 청랑한 음률, 그리고 짝 찾는 꾀꼬리, 조그만 산새들의 지져김, 풍경(風鏡) 흔드는 바람소리, 예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인 게다. 아마도 안평대군이 이 곳에 와 풍경(風景)에 홀려 안견에게 그리게 한 곳이 여기가 아닐까?
▲풍악제일루(범종각)이다.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경내
▲범종루, 어디에서나 수바위가 시야에 들어 온다.
전통다실 란야원에 들러 이 곳 소나무에서 채취했다는 송화 가루로 탄 차 한잔을 음미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풍악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린 팔작지붕의 범종각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명부전과 정면으로 최근 축조된 구층석탑, 대웅전이 자리해 있다. 화암사는 절터가 기운이 매우 센 곳이라 예부터 많은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센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최근에 비보성격의 이 구층석탑을 세웠다 한다. 대웅전을 끼고 왼편을 돌아 조금 오르면 너럭바위가 있는 이름 그대로 신선계곡 옆으로 속된 말로 기도발이 잘 듣는다 하여 찾는 이가 많은 삼성각이 자리해 있다.
▲전통다실 란야원. 차를 마시며 관람하는 창밖에 산수화가 멋드러지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문
▲ 기도하기 좋은 곳이라 소문이 난 삼성각
주지 운곡 웅산(雄山)스님은 자연 그대로가 부처님 법이기에 자연이 어울어진 화암사야말로 진리와 행복의 근원지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설법은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침묵의 언어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더욱 도(道)에 가까우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신다.<인생이란, 그리고 선이란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 行行到處, 至至發處 행행도처, 지지발처 -출발한 곳이 마침내 끝나는 곳이고, 끝나는 곳이 다시 출발하는 곳이다.->라 시며 총총!
▲단아하고 안정된 대웅전과 마당. 반야용선 형국이라 했다.
화암사(禾巖寺)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27호로 신라 혜공왕 5년(769) 진표율사(眞表律使)가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마치 곡식을 쌓아 둔 낱가리 곳집같이 보이는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는데, 그래서 이 바위 이름을 따 화암사라 이름하였고, 창건 이래 고종 원년까지 1096년간 화재가 5번이나 났는데 이것은 불화(火)자 화암이란 이름 때문이다 하여 수극화(水克火) 물이 불을 이긴다는 풍수설을 인용, 수(水)대신 음이 같은 수(穗)자를 쓰면 화(禾)와 같으니 수암(穗岩)이라 했는데, 후에 또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화암사(禾巖寺)라 했으며, 1911년 건봉사의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1986년부터 중창불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이르렀고,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 때 불교국 천 여명이 대웅전에서 수계를 받은 것을 계기로 유명해졌다. 동쪽으로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큰 뜻이 담겨 있는 사찰이다.
▲인생은 언제나 혼자서 가야하는 기나긴여정, 사자처럼 씩씩해 지자.
그렇다. 정말 평안하기 어려운 이 시절, 할 수만 있다면 한 사나흘 화암사에 들러 약식의 절밥으로 속을 다스리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속세에 모든 욕심 다 떨어 내고 기도삼매에 빠져 지친 나 좀, 다독여 위로도하고 칭찬도하고 다시 약발들면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일어서서 집으로 가자. 그리고 세상에 가자.
화암사 가는 길 경춘고속도로→ 동홍천 → 인제 합강변 국도 → 미시령 터널(2시간정도) → 미시령터널지나 삼거리(좌회전) → 대명콘도(옆길) → 화암사 가는길 :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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